예능 보고 수다떨기

MBC에서 꽃핀 리얼 버라이어티, KBS에서 열매를 맺다.

ㅌntertainer 2009. 11. 25. 16:48

 

토요일 저녁에 친구에게서 <지금 뭐 해?>라고 전화가 옵니다.

그때 <응, TV 봐.>라고 대답하면 친구는 한심하다는 듯이 말합니다.

토요일 저녁에 그리 할 일이 없냐며....

특히 젊은 미혼 남녀들에게 토요일 저녁에 집에서 TV나 보고 있는 현실은 무척이나

씁쓸하고, 감추고 싶은 일입니다.

 

그런데 어느 날부터 토요일 저녁에 친구가 <지금 뭐 해?>라고 물어올 때의 대답이

달라집니다.

<TV 봐.>가 아니라 <무한도전 봐.>라고.

그러면 평소에 함께 <무한도전>을 즐겨 보던 친구이기에, 그닥 한심하게 보지 않고

내용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봅니다.

 

 

그 어려운 토요일 저녁 예능의 <닥본사>(닥치고 본방 사수!) 정예 팬들, 그것도 젊

은 시청자들을 TV 앞에 앉힌 <무한도전>은 그 자체로 이미 레전드입니다.

한때 30%까지 돌파한 그 기록은 앞으로도 거의 깨지기 힘든 기록일 것입니다.

지금도 여전히 동시간대 1위를 차지하면서 도전 아이템에 따라 20%를 넘나들고

있습니다.

정말 대단합니다.

 

이렇게 <무한도전>은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새로운 장르를 성공적으로 꽃을 피웠

습니다.

유재석의 방송 삼사를 옮겨가며 펼쳤던 고집스러운 도전이 김태호 PD라는 걸출한

연출가와 만나 엄청난 예능판의 대 격변을 일으킨 것입니다.

 

그 바탕을 만든 것이 바로 MBC 예능국의 뚝심이었습니다.

시청률 4%대에서 버벅거리던 <무모한 도전>을 끝까지 밀어준 것입니다.

어떻게 보면 토요일 저녁 예능에 대해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는 반증일 수도

있습니다.

요즘 <일요일 일요일 밤에>에서 그런 뚝심을 보이지 못하고 있으니까요.

 

 

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리얼 버라이어티가 MBC의 <무한도전>을 통해 찬란한 꽃을

피웠지만, 아이러니하게 그 달콤한 열매를 즐기는 것은 오히려 KBS가 되고 있습

니다.

지금 현재 각광을 받고 있는 프로그램들 제목만 쭉 나열해도 한눈에 알 수가 있습

니다.

<1박 2일>, <남자의 자격>, <천하무적 야구단>, <청춘불패>....

 

SBS는 역시 유재석이 활약하는 <패밀리가 떴다>로 일요일 저녁 시간을 한때 평

정한 적이 있지만, 그 역시 이제는 KBS의 <1박 2일>과 <남자의 자격> 연합군에게

밀리고 있는 형국이고, 뒤 늦게 MBC도 <노다지>와 <오빠밴드>를 야심차게 출범

시켰지만 결국 폐지의 쓴 맛을 보고 말았습니다.

 

반면에 KBS는 리얼 버라이어티를 꽃 피운 일등공신인 유재석이 빠진 상태로 계속

해서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.

그나마 <1박 2일>은 강호동이 버티고 있어서 그렇다고 하지만, 나머지 프로그램들

은 유재석, 강호동이라는 흥행보증수표격인 투톱 MC가 없이 출발해 전혀 의외의

결과를 보여주며 제 몫을 해주고 있습니다.

 

 

<남자의 자격>은 이경규가 SBS에서 실패한 <라인업>을 가져와 성공시킨, <무한도

전>류의 다양한 도전 방식의 프로그램이고, <천하무적 야구단>은 야구에 도전하는

스포츠 성장 프로그램이며, <청춘불패>는 <1박 2일>이나 <패밀리가 떴다>가 지역

을 옮겨다니는 것에 대한 역발상으로, 농촌에 정착해 터전을 일구어나가는 개척 버

라이어티로 자리를 잡아나가고 있습니다.

 

편성 당시 상황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았습니다.

<남자의 자격>은 당시 일요예능 최고 시청률을 자랑하던 <패밀리가 떴다>와 맞승

부를 펼쳐야 했고, <천하무적 야구단>은 유재석의 <무한도전>과 강호동의 <스타

킹> 틈새에서 생존경쟁을 펼쳐야 했으며, <청춘불패>는 시청률이 불모지였던 금요

심야 시간에 시청률 5% 미만이던 <희희낙락>을 이어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.

 

이렇게 <무한도전>이라는 화려한 꽃을 피웠지만 리얼 버라이어티의 달콤한 열매

들은 타 방송국에 빼앗긴 MBC의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아이러니를 또 한번 배웁

니다.

어쩌면 리얼 버라이어티의 파괴력을 가장 예측하지 못했던 것이 MBC가 아니었을

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.

 

실제로 예능 프로그램의 황금시간대인 일요일 저녁 시간에 MBC는 계속 기존의

방식을 고수한 반면에 KBS와 SBS는 재빠르게 새로운 방식에 도전해 좋은 결과

를 얻었습니다.

시청률을 얻기 어려운 토요일 저녁 시간대에 시청률의 대상승을 이룬 방식이라면

얼마든지 다른 시간대에서 더 큰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당연한 예측을 MBC만 하

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.

 

그렇게 보면 역시 <무한도전>이 얼마나 대단한 위치에 있는 프로그램인지를 다시

한 번 더 알 수가 있습니다.

요즘 <뉴욕특집>이 이런저런 구설수에 오르고 있지만, <무한도전> 만큼은 앞으로

계속 되어야 할 이 시대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임에는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.